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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위험', 다시 올라간 경고등
매년 전 세계 환경 전문가들의 체감 위기의식을 시곗바늘로 표현하는 '환경위기시계'가 올해 한국의 시각을 오후 9시 34분으로 발표했다. 자정에 가까울수록 위기의식이 높다는 뜻인데, 지난해 8시 53분에서 무려 41분이나 앞당겨진 수치다[1]. 1992년 처음 만들어진 이 지표는 환경재단과 일본 아사히글라스재단이 2005년부터 매년 공동 발표해왔으며, 전 세계 123개국의 환경·지속가능발전·ESG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146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토대로 국가별 가장 시급한 환경 분야 3가지를 가중 평균해 산출한다[1]. 한국은 지난해 한 차례 '위험' 단계로 완화됐다가, 올해 다시 '매우 위험' 구간으로 올라섰다. 숫자 하나가 바뀐 것이지만, 그 배경에는 지난 1년 한국 사회가 실제로 겪은 기후 재난들이 있다.
최근 몇 년간의 흐름을 보면 이번 반등이 더 눈에 띈다. 2024년 환경위기시계 발표 당시 한국의 시각은 9시 11분으로역시 '매우 위험' 수준이었는데[2], 지난해에는 8시 53분으로 다소 완화돼 '위험' 단계로 내려갔다가, 올해 9시 34분으로 다시 '매우 위험' 구간에 복귀했다[1].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환경 위기의식이 특정 해의 재난경험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추세 자체는 뚜렷하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숫자로 보는 위기, 그리고 세대 차이
올해 세계 평균 환경위기시각은 9시 39분으로, 지난해(9시 33분)보다 6분 자정에 가까워졌다. 2001년 이후 26년 연속 '매우 위험' 구간인 9시대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1]. 지역별로는 서유럽(10시 10분)과 북아메리카(10시 9분)의 위기의식이 가장 높았고, 중동(9시 13분)은 상대적으로 낮았다[1]. 한국의 9시 34분은 세계 평균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지만, 1년 사이 41분이나 급등한 변화 폭 자체가 이례적이다. 위기의식이 가장 높은 서유럽과 북아메리카가 동시에 기후 정책 논쟁과 시민사회의 압박이 가장 활발한 지역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위기의식의 수준과 그 사회가 정책 논의에 투입하는 에너지가 어느 정도 맞물려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올해 한국 응답자 수가 지난해 245명에서 510명으로 늘어난 점은 표본 확대가 결과에 일부 영향을 줬을 가능성으로 함께 짚어볼 대목이다[1]. 흥미로운 지점은 세대별 인식 차이다. 60대 이상에서 위기의식이 가장 높게 나타난 반면, 20·30대는 상대적으로 낮았다[1]. 기후위기를 더 오래 마주해야 할 젊은 세대의 경각심이 오히려 낮다는 역설은, 위기를 체감하는방식과 정보 접근성의 차이를 함께 고민하게 만든다. 전문가들이 꼽은 가장 시급한 환경 과제는 기후변화(33%), 생물다양성(16%), 사회·정책(13%) 순이었고, 문제 해결의 핵심 요인으로는 정부의 환경 정책과 리더십, 국제협력 및글로벌 거버넌스가 꼽혔다[1].
환경위기시계는 과학적 관측 장비가 아니라 전문가 집단의 체감 설문을 지수화한 지표라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응답자 구성이나 표본 규모가 해마다 달라질 수 있고, 특정 해에 크게 보도된 재난 사건이 응답에 더 크게 반영될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이 지표가 20년 넘게 꾸준히 주목받는 이유는, 각국의 환경·지속가능발전 현장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전문가들의 누적된 판단을 비교 가능한 숫자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정 해의 수치 하나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여러 해에 걸친 흐름과 그 흐름을 만든 실제 사건들을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계가 빨라진 이유, 이 여름의 기록들
이 수치가 추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올해 한국이 실제로 유례없는 기후 재난을 연달아 겪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여름(5월 15일~8월 2일) 전국에서 2025명이 온열질환을 앓았고 이 가운데 16명이 숨졌다[3]. 폭염 기간 기온 기록은 일주일 새 세 차례나 경신됐으며, 양산시에서는 42.5도라는 역대 최고기온이 관측됐다[3]. 서울 전역에 역대 최고 등급인 폭염경보가 발령됐고, 기상청은 “극한의 생명을 위협하는 더위가 예보되어 있다”고 밝혔다[3]. 폭염이 지나간 뒤에는 기록적 폭우가 뒤따랐다. 8월 17일 경남 거제시에는 자정부터 오후 1시까지 577.4mm의 비가 쏟아져, 1972년 관측 이래 하루 최다 강수량이자 전국 역대 3위 기록을 세웠다. 시간당 최대 강수량은 거제124.5mm로 약 200년 빈도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4]. 거제 옥포동에서는 산사태로 아파트 저층이 토사에 덮쳐 주민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고, 통영에서는 산사태에 매몰됐던 60대 여성이 1시간 30분 만에 구조됐다. 전국적으로 838건의 호우 피해 신고가 접수됐고, 부산과 경남에서는 116가구 159명이 산사태와 침수 위험으로 대피했다[4]. 역설적이게도 같은 폭우로 경남 지역 농업용 저수지의 저수율은 32.2%에서 43.1%로, 거제의 경우 28.7%에서 73.6%로 크게 올라 그간의 가뭄이 일부 해소되기도 했다[4]. 폭염과 가뭄, 그리고 극한 호우가 같은 해, 같은 지역에서 짧은 기간을 두고 번갈아 나타난 셈이다. 기후위기가 '더위'나 '비' 어느 한 방향으로만 심해지는 것이 아니라, 변동의 폭 자체를 키우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환경재단 최열 이사장은 “기후위기가 먼 미래의 위험이 아니라 일상을 직접 위협하는 현실이 됐다”고 진단하며, 최근 네팔 대홍수 등을 언급해 아시아 시민사회와 국제사회의 연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1].
경고음을 정책으로 바꾸는 일
문제는 이런 위기의식이 매년 발표되고도 일회성 경고에 그쳐왔다는 점이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은 “높아진 위기의식이 일시적 경고에 그치지 않고 일관된 정부 정책과 실질적 대응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1]. 실제로 올여름 겪은 폭염과 집중호우는 예측 가능한 인프라 투자와 재난 대응 체계의 공백을 그대로 드러냈다. 역대최고 기온이 일주일 새 세 차례 경신될 만큼 기후의 변동 폭 자체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통계에 기반한 재난대비 기준은 계속 뒤처질 수밖에 없다. 거제의 시간당 강수량이 '200년 빈도'로 평가된 것처럼, 이제는 '극히 드문 재난'이 해마다 어딘가에서 반복되는 시대가 됐다고 봐야 한다.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목한 해법, 즉 정부의 일관된환경 정책과 국제협력이 선언에 머물지 않으려면 예산과 제도, 지역 단위의 구체적 집행 계획으로 이어져야 한다. 한국은 이미 2050년 탄소중립을 국가 목표로 선언한 상태지만, 목표 선언과 매년 반복되는 극한 기후 재난 사이의간극은 여전히 크다. 폭염에 취약한 고령층과 야외노동자를 위한 지역 단위 대응 매뉴얼의 정교화, 하천과 저수지등 수방 인프라의 설계 기준을 과거 통계가 아닌 최신 강수 패턴에 맞춰 재검토하는 작업, 그리고 기후재난을 둘러싼 범부처 예산의 우선순위 조정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무엇보다 환경위기시계가 지적한 세대 간 인식 격차를 좁히는 일도 과제로 남는다. 위기의식이 높은 고령층의 경험과, 상대적으로 체감도가 낮은 청년 세대의 현실 감각을 함께 반영하는 공론장이 마련되지 않으면, 정책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세대 간온도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자정이 오기 전에
환경위기시계가 올해 다시 '매우 위험'으로 돌아선 것은, 이 시계가 추상적 지표가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겪은 여름의 기록을 반영한 결과라는 점에서 더 무겁게 다가온다. 폭염으로 16명이 숨지고, 한 달 뒤 기록적 폭우로 또 다른 생명이 스러졌다. 세대 간 위기의식의 온도차는 이 경고가 누구에게나 똑같이 와닿지 않는다는 사실도 함께 보여준다. 시곗바늘이 자정에 가까워질수록 되돌릴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든다. 올해의 41분이라는 변화 폭이 다음 해에는 또 다른 숫자로, 혹은 또 다른 재난의 기록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지금의 경고음을 구체적인 정책과 예산으로 옮기는 작업이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매년 발표되는 이 시계를 그저 한 해의 뉴스로 소비하고 지나칠 것인지, 아니면다음 여름을 대비하는 구체적인 질문의 출발점으로 삼을 것인지는 결국 지금 이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참고자료
[1] 아이뉴스24, "韓 환경위기시계 지난해보다 41분 빨라져…'매우 위험' [지금은 기후위기]", 2026.9.8. https://inews24.com/view/2003399
[2] 퓨처한국(futurechosun), "'2024 환경위기시계' 발표… 한국은 9시 11분 '매우 위험'", 2024. https://www.futurechosun.com/archives/98814
[3] Khaleej Times, "Heat kills 16 in South Korea this summer: Interior ministry", 2026.8.4. https://www.khaleejtimes.com/world/asia/heat-kills-16-south-korea-this-summer
[4] The Korea JoongAng Daily, "Historic downpour batters southern Korea, leaving 1 dead, 4 injured", 2026.8.17. https://www.koreajoongangdaily.com/korea/historic-downpour-batters-southern-korea-leaving-1-dead-4-injured/128284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