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봄, 가족의 몫에서 사회의 책임으로
  • 10월 29일, 국제 돌봄과 지원의 날이 한국에 묻는 것

    오는 10월 29일은 유엔이 정한 '국제 돌봄과 지원의 날(International Day of Care and Support)'이다. 유엔은 2023년 7월총회 결의(A/RES/77/317)를 통해 이날을 공식 지정하며,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돌봄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며 돌봄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할 것을 각국에 촉구했다[1]. 유엔여성기구(UN Women)는 이를 “성평등과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이정표”라고 평가했다[1]. 한국에서도 참여연대를 비롯한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10월 21일부터 11월까지돌봄노동자 처우개선 토론회, 가사노동자 법적 보호 논의, 돌봄기본법 소개 행사 등을 이어가며 이 기간을 기념하고있다[2]. 그런데 올해 이 날은 유독 묵직하게 다가온다. 같은 시기 정부가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라는, 수십 년간가족의 몫으로만 떠넘겨졌던 문제에 처음으로 국가 재정을 투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돌봄이 더는 개인과 가족의'사정'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설계해야 할 제도의 문제라는 사실이, 숫자와 정책을 통해 동시에 드러나고 있는셈이다.

    간병비, 누가 감당하고 있나

    한국은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를 도입해 요양시설이나 재가에서 받는 돌봄 서비스 일부를 사회보험으로 지원해왔다. 그러나 정작 환자가 가장 많이 머무는 요양병원의 '간병비'는 이 제도의 틀 밖에 있었다. 요양병원은 장기요양보험이 아니라 건강보험 체계에 속해 있는데, 건강보험은 의사의 진료·처치 비용만 보장하고 간병인의 돌봄 노동 비용은 보장 범위에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식사나 이동, 배설, 체위 변경 같은 일상적 돌봄을 전담하는간병인의 비용을 환자와 가족이 전액 부담해야 했다. 2023년 기준 월평균 간병비는 약 370만원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65세 이상 가구의 중위소득(224만원)을 한참 웃도는 금액이다[3]. 한 사람의 돌봄을 감당하기 위해 가족 전체의생활 수준이 흔들리는 구조인 셈이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장석용 교수 연구팀이 요양병원 227곳과 간병인 7167명을 조사한 결과는 이 돌봄의 질적 기반마저 허술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간병인의 52%가 외국인이었고, 48%는 자격증이 없었으며, 병원과 직접 고용 관계를맺은 경우는 10%에 불과했다. 간병인의 활동을 제대로 모니터링하지 않는 병원도 61%에 달했다[4]. 비용은 가족이전부 떠안고, 돌봄의 질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이중의 공백이 그동안 방치돼 있었던 것이다.

    숫자 너머의 비극, 간병살인

    이 공백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사건이 '간병살인'이다. 경찰대학 부설 치안정책연구소가 2007년부터2023년까지 17년간 확정된 형사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간병살인은 총 228건으로 집계됐다. 연평균 발생 건수는2007~2012년 6.0건에서 2013~2023년 17.5건으로 약 3배 늘었고, 2020년에는 한 해 30건까지 치솟았다[3]. 유형별로는 자녀가 부모를 살해한 경우가 42.1%로 가장 많았고, 부부 간 살해가 31.6%,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가 가해자가 된 경우가 19.3%였다. 가해자의 연령대는 70대 이상이 전체의 3명 중 2명에 가까웠는데, 이는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 돌봄'이 보편화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3]. 주 돌봄자의 79.1%가 여성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돌봄의 책임이 유독 여성에게, 그리고 고령의 가족 구성원에게 집중돼 있다는 뜻이다.

    더 주목할 연구 결과는 지난해 9월 치안정책연구 학술지에 발표된 분석이다. 2007~2024년 간병살인 형사판결문 143건을 들여다본 이 연구는, 가해자의 '돌봄 효능감'—자신이 돌봄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 떨어진 경우가전체의 50.3%에 달했다고 밝혔다. 특히 부모를 돌보는 자녀의 경우, 돌봄 효능감이 낮을수록 살해에 이를 가능성이수면 부족이나 돌봄 기간 같은 다른 조건을 통제하고도 약 3.5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5]. 연구진은 벼랑 끝에몰린 돌봄자가 “이 고통을 끝내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왜곡된 확신에 이를 수 있다고 분석하며, 치매안심센터나 보건소 등에서 돌봄자의 스트레스·수면·효능감을 조기에 선별해 정신건강 서비스로 연계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5]. 비용 부담을 덜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고위험 돌봄자를 먼저 찾아내 지원해야 한다는 뜻이다. 참고로 일본은 2006년 고령자학대방지법을 제정하고 2007년부터 경찰청 범죄통계에 '간병살인'을 별도 동기로 집계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이에 대응하는 법적 개념이나 공식 통계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3].

    정부의 응답,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

    이런 배경 속에서 보건복지부는 요양병원 간병비를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고있다. 구체적으로는 의료기관 인증을 받고 100병상 이상을 갖추며 간병인을 직접 고용한 '의료중심 요양병원' 약500곳을 우선 선정해, 의료·간병 필요도가 가장 높은 환자군과 중증·희귀질환자, 치매·파킨슨병 환자, 장기요양 1·2등급 입원환자 등 약 8만 5000명을 대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1][6]. 환자 본인부담률은 현행 100%에서 30% 안팎으로 낮추는 방향이 논의되고 있다[1]. 복지부는 올해 안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제도화 방안을 확정하고, 내년 상반기 시범사업을 거쳐 2027년부터 단계적으로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1][6]. 2022년 기준 한국의 사적 간병시장 규모가 약 10조원으로 추산된다는 점을 고려하면[6], 이번 급여화는 그 비용 구조의 상당 부분을 민간 부담에서 공공 부담으로 옮기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다만 이 정책이 당장 모든 환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은 아니다. 우선 지정되는 '의료중심 요양병원'은 약 500곳, 수혜 대상 환자는 약 8만 5000명 선으로 설계되고 있는데, 이는 전국의 수많은 요양병원과 입원 환자 가운데 일부에 해당하는 규모다. 간병 필요도가 상대적으로 낮거나, 선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병원에 입원한 환자와 가족은 이번 1차 급여화의 수혜 범위 밖에 남게 된다. 따라서 이번 조치를 '완성된 해법'이 아니라 '첫 단계'로 받아들이고, 이후 단계적 확대의 속도와 재원 마련 계획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일이 중요하다.

    제도화만으로는 부족하다, 돌봄의 공공성과 노동권

    급여화는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그것만으로 돌봄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국제 돌봄과 지원의날을 맞아 한국의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공통으로 제기하는 요구는 비용 지원을 넘어선다. 이들은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돌봄노동의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돌봄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돌봄기본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가사사용인을 포함해 현재 근로기준법의 보호 밖에 있는 돌봄노동자들의 법적 지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온다[2]. 실제로 이번 정책에서도 간병인의 절반 이상이 비공식적 고용 관계에 있고, 절반 가까이가 무자격자라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환자에게 비용을 지원하는 것과 별개로 간병인이라는 직업 자체의 처우와 전문성을 끌어올리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비용은 국가가 분담하더라도, 그 돌봄을 실제로 수행하는 사람의노동 조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질 낮은 돌봄의 급여화'에 머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국제 돌봄과 지원의 날이 성평등 의제로 지정된 이유도 다시 새겨볼 만하다. 앞서 살펴본 간병살인 통계에서도 주 돌봄자의 약 80%가 여성이었다. 돌봄이 무급 혹은 저임금 노동으로 취급되고 그 부담이 여성에게 편중되는 구조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고령화 속도가 유독 빠른 한국에서는 그만큼 더 시급한 과제이기도 하다. 돌봄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은 결국 누가 돌보고, 누가 그 노동의 대가를 받으며, 누가 쉴 권리를 보장받는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돌봄사회로 가는 길

    간병비 급여화, 간병살인 통계, 국제 돌봄과 지원의 날이라는 세 가지 장면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돌봄을누구의 책임으로 둘 것인가. 그동안 한국 사회는 이 질문에 암묵적으로 '가족'이라고 답해왔고, 그 답이 감당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비극이 발생했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로 꼽히는 한국에서, 돌봄을 받아야 하는 사람과 돌봄을 떠안아야 하는 사람 모두는 앞으로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번 간병비 급여화가 그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비용의 분담과 함께 돌봄노동자의 처우 개선, 고위험 돌봄자에 대한 조기 발굴과정신건강 지원, 그리고 돌봄을 사회 전체의 책무로 명시하는 법적 기반까지 갖춰질 때, 돌봄은 비로소 누군가의 삶을 소진시키는 일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짊어지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1] UN Women, "Member States agree on International Day of Care and Support: A milestone for gender equality and sustainable societies", 2023.8. https://www.unwomen.org/en/news-stories/news/2023/08/member-states-agree-on-international-day-of-care-and-support-a-milestone-for-gender-equality-and-sustainable-societies

    [2] 참여연대, "[함께해요] 2026년 10.29 국제 돌봄과 지원의날 행사", 2026. https://peoplepower21.org/welfare/2054855

    [3] 세계일보, "간병살인 年 17.5건… 10년새 3배 ↑", 2025.6.30. https://www.segye.com/newsView/20250630515282

    [4] 경향신문, "'간병비 전액 부담' 줄인다···간병인 직고용·100병상 이상 요양병원부터 간병비 급여화 추진", 2026.7.28. https://www.khan.co.kr/article/202607281515001

    [5] 세계일보, "'돌봄 효능감' 저하 땐 간병 비극 3.5배 높다", 2025.10.2. https://www.segye.com/newsView/20251002510575

    [6] 세계일보, "요양병원 간병비 부담 30%로 준다", 2026.7.28. https://segye.com/newsView/20260728514850

  • 글쓴날 : [26-10-19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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