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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월 8일)은 24절기 가운데 열일곱 번째 절기인 한로(寒露)다. 추분과 상강 사이에 드는 이 절기는 '찬 이슬이 내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1]. 실제로 기상청 예보를 보면 이름값을 하고 있다. 전국 아침 최저기온은 6~15도로 평년과 비슷하거나 낮은 수준인데, 강원 내륙·산지는 5도 안팎까지 떨어지고 서울은 12도, 대전은 9도, 춘천은 7도에 그칠 전망이다[1]. 반면 낮에는 서울 25도, 광주 26도까지 오르며 평년 수준을 회복해, 밤낮의 기온차가 15도 안팎으로 크게 벌어진다[1]. 한 매체는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24도로 평년보다 높아지는 이유를 "상대적으로 온화한 서풍의 영향"이라 설명하면서도, 아침과 낮의 기온차가 10도 이상 벌어지니 겉옷을 챙기라고 당부했다[2]. 다만 절기 이름이 곧 그날의 날씨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이슬은 밤사이 지표면이 식어 공기 중 수증기가 응결할 때 맺히는 현상이라, 한로라는 이름만으로 특정 지역에 반드시 이슬이 맺히거나 기온이 급락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3].
24절기는 본래 중국 황하 유역의 기후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한반도의 실제 기후와 정확히 들어맞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오랜 세월 농사와 일상의 리듬을 가늠하는 잣대 역할을 해왔다. 한 해를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누고 다시 각 계절을 여섯 마디씩 쪼갠 이 체계는, 기온계도 일기예보도 없던 시절 사람들이 계절의 변화를 읽어내던 나름의 과학이었다. 한로 무렵이면 밭에서는 배추·무·쪽파·고추 같은 가을 작물의 수확 시기를 가늠하고, 서리에 대비해 거둬들일 것과 더 둘 것을 가리는 손길이 바빠진다[4]. 한 농업 정보 사이트는 한로를 "봄부터 여름까지 키운 것을 거두고, 겨울을 준비하기 시작하는 때"라 풀이하면서, 마늘이나 양파처럼 가을에 심어 겨울을 나는 작물의 자리를 미리 마련해 두라고 권한다[4]. 정해진 절식은 따로 없지만, 날이 좋을 때 높은 곳에 올라 가을 경치를 바라보는 풍습이 전해진다는 점도 흥미롭다[4].
한로 다음 날은 한글날, 이어지는 가을 연휴
올해는 한로 바로 다음 날인 10월 9일이 한글날이라 짧은 연휴 분위기가 이어진다. 날씨도 거들어준다. 연휴 기간에는 기온이 점차 올라 낮에는 다소 덥게 느껴질 정도로, 창원과 부산은 26도, 청주는 25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보됐다[2]. 다만 남부와 제주 지역은 비 소식이 있어 우산은 챙기는 게 좋겠다[2]. 밤사이 쌀쌀했던 공기가 낮 동안 완전히 풀리는 이 환절기는, 반팔과 겉옷을 번갈아 꺼내 입어야 하는 다소 수고스러운 계절이기도 하다. 그만큼 아침저녁 기온차에 대비한 옷차림이 당분간 중요해 보인다.
열하루 뒤에는 중양절, 국화와 함께하는 명절
한로를 지나 열하루 뒤인 10월 19일은 음력으로 9월 9일, 바로 중양절(重陽節)이다[5][6]. 음양 철학에서 홀수는 '양(陽)'이고 9는 가장 큰 양수인데, 같은 양수가 겹치는 날이라 하여 '중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5]. 원래는 양기가 지나치게 강해 불길하다고 여겨 이를 막기 위한 행사로 시작됐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해가 겹친다는 것이 오히려 길조로 받아들여져 축하의 명절로 바뀌었다고 한다[5]. 신라 때는 군신이 모여 시가를 즐기는 연례행사였고, 고려 때는 국가적인 향연으로 자리 잡았다는 기록도 전해진다[5].
중양절의 대표적인 풍습은 국화와 떼어놓을 수 없다. 늦가을에 피어나는 국화로 술을 담가 마시며 장수를 기원하는 '국화주', 국화를 반죽에 넣어 부쳐 먹는 '국화전', 그리고 화채를 만들어 먹는 풍습이 전해진다[5]. 또 하나는 '등고(登高)'라 하여 산에 올라 시를 읊고 산수를 즐기는 일이다[5]. 중국의 옛 전설에서는 9월 9일에 산에 올라 재앙을 피했다는 이야기가 이 풍습의 유래로 전해지는데, 이후로도 이날 산에 오르는 전통이 이어졌다고 한다[5]. 이웃 나라들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발견된다. 중국 한나라 때 공식적인 축제로 자리 잡았고, 2012년에는 노인의 권익을 기리는 '노인의 날'로 지정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헤이안 시대부터 국화주, 이른바 '기쿠사케'를 마시는 풍습이 이어져 왔다[5].
마침 한로와 중양절 사이, 가을이 깊어가는 이 시기에는 전국 곳곳에서 국화를 주제로 한 지역 행사들이 문을 연다. 예컨대 경남 양산시는 오는 10월 30일부터 '양산국화축제'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7]. 국화가 만발하는 늦가을의 들녘을 걸으며 중양절의 옛 풍습을 자연스레 떠올려보는 것도 이 계절을 보내는 한 방법이겠다.
등고의 전통, 오늘의 단풍 나들이로
중양절의 '등고' 풍습, 즉 산에 올라 가을 경치를 즐기던 전통은 공교롭게도 지금의 단풍 나들이 문화와 맞아떨어진다. 산림청이 지난달 22일 발표한 '2026년 한반도 단풍절정 예측지도'를 보면, 올해 단풍은 지난 9월 14일 강원 점봉산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에서 첫 관측이 이뤄진 뒤 10월 초부터 강원 북부 산지를 중심으로 물들기 시작해 10월 하순 전국적으로 절정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8]. 구체적으로는 설악산이 10월 20일, 속리산이 10월 28일, 내장산이 11월 4일, 한라산이 11월 6일 각각 절정을 맞을 전망이며, 최근 5년 평균보다 약 0.8일 늦은 속도라고 한다[8]. 흥미롭게도 설악산의 단풍 절정 예상일은 중양절(10월 19일)과 불과 하루 차이다. 옛사람들이 중양절에 높은 산에 올라 가을빛을 눈에 담았듯, 올해도 비슷한 시기에 전국의 산을 찾는 발걸음이 이어질 듯하다.
"며느리도 돌아오게 하는" 가을 밥상
절기와 명절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히 먹거리로 눈이 간다. 국화만큼이나 이 계절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전어와 대하다. 전어는 산란을 앞두고 영양을 쌓는 시기라 가을철 어획량과 지방 함량이 함께 늘어나는데, 지방이 오른 덕에 고소한 맛이 두드러져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9]. 서해안을 중심으로 나는 대하 역시 가을 산란을 앞두고 살이 오르고 단맛이 강해지는 시기를 맞아, 소금구이나 찜으로 즐기는 사람이 많다[9]. 올해는 서울 주요 호텔 뷔페와 한식당들이 전어·대하 코스 메뉴를 내놓았고, 동네 횟집에서도 9월 중순부터 전어를 찾는 손님이 늘었다는 전언이다[9]. 다만 업계에서는 이런 한정 메뉴가 대개 10월 중순을 넘기면 다른 계절 재료로 자리를 내준다고 보는 만큼, 가을 미식을 즐기려면 서두르는 편이 좋겠다[9].
세시풍속이 요즘에도 쓸모 있는 이유
한로와 중양절처럼 오래된 절기·명절을 요즘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그저 옛것을 추억하는 취미에 그치지는 않는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릴 여유를 놓치기 쉬운 요즘, 24절기는 달력 위에 찍힌 마디마디가 되어 '벌써 가을이 이만큼 왔구나' 하고 걸음을 멈춰 세운다. 아침 기온이 뚝 떨어지는 날 '한로구나' 하고 겉옷을 챙기고, 국화 향이 번지는 거리를 지나며 '중양절이 머지않았네' 하고 떠올리는 일은 작지만 분명한 계절감이다.
게다가 농사와 밀접하게 얽혀 있던 옛 절기의 지혜는 지금도 실생활에서 쓸모를 찾을 수 있다. 한로 무렵 서리에 대비해 가을 작물을 거두고 겨울 작물을 심을 자리를 마련하던 농사 요령은, 텃밭이나 화분 농사를 짓는 요즘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조언이다[4]. 난방을 점검하고 배수로를 정리하며 겨울 채비를 서두르라는 당부 역시, 24절기가 수백 년 전 농경사회만을 위한 유물이 아니라 지금의 생활에도 적용될 수 있는 실용적인 지혜라는 점을 보여준다[4].
올가을엔 한로의 찬 이슬과 한글날의 포근한 낮 기온을 함께 느껴보고, 열흘 뒤 중양절에는 국화차 한 잔을 곁에 두고 가을이 무르익는 소리에 잠시 귀 기울여보면 어떨까. 전어 한 접시를 앞에 두고, 혹은 가까운 산자락에 올라 아직은 푸른 나뭇잎 사이로 슬쩍 비치는 단풍의 기미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거창한 행사가 아니어도, 계절이 건네는 신호를 알아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한 해의 가을을 풍성하게 보내는 방법이 될 것이다. 다가올 상강(10월 23일)과 입동(11월 7일)까지[10], 올해 가을이 우리에게 건네는 마디마디를 하나씩 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