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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조금 낯선 이름의 토론회가 열렸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한 "동물복지기본법 제정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다[1][8].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가 어느덧 국민 셋 중 한 명에 가까워진 지금, 정부와 국회가 동시에 "동물을 어떻게 정의하고 대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법으로 정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흐름의 핵심 문장은 하나로 요약된다. "동물은 관리 대상이 아니라 생명체"라는 것[2]. 익숙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 문장이, 왜 지금별도의 법률로 만들어져야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호'에서 '복지'로, 개념이 바뀌면 정책도 바뀐다
지금까지 동물 관련 정책의 근간은 1991년 제정된 동물보호법이었다. 이 법은 이름 그대로 학대 방지와 유기 금지 등 '보호'에 초점을 맞춘 규제·단속 중심의 법률이다. 반면 이번에 논의되는 동물복지기본법은 동물을 "고통과 감정을 느낄 수있는 생명체이자 고유의 가치를 지닌 존재"로 규정하고, 종 고유의 생물학적·행동적 욕구가 충족되는 환경을 조성하는것을 국가의 책무로 명시한다[3]. 서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28일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기존 동물보호법을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국가 동물복지 정책의 최상위 원칙을 담는 '상위 기본법'으로 설계됐다는 점이 특징이다[3]. 서 의원 측은 발의 배경에 대해 기존 법이 "규제와 단속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동물복지 정책의 장기적인 방향성과 종합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3].
농식품부 이연숙 동물복지정책과장 역시 지난 9월 토론회에서 이번 법 제정이 "우리 사회의 동물복지 정책이 나아갈 기본 방향을 정립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밝혔다[1]. '보호'라는 소극적 개념에서 '복지'라는 적극적 개념으로의 전환은단순한 용어 변경이 아니라, 국가가 동물의 삶의 질 자체를 정책 목표로 삼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왜 지금인가 – 30%에 육박하는 반려인구, 그리고 사각지대들
이런 논의가 힘을 받는 배경에는 수치로 확인되는 사회 변화가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국가승인통계로 처음 실시한 '반려동물 양육현황 조사'에 따르면, 2025년 기준 국내 반려동물 양육가구 비율은 29.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4]. 이는2025년 10월 31일부터 12월 12일까지 전국 17개 시·도 3,000가구를 대상으로 전문 조사원이 직접 방문 면접한 결과이며, 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는 ±1.79%포인트다[4]. 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 중 개를 키우는 비율이 80.5%로 가장 높았고, 고양이가 14.4%로 뒤를 이었다[4].
국민 세 가구 중 한 가구 가까이가 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은, 동물이 더 이상 개인의 취미나 사적 영역에 머무르는 존재가 아니라 공적 정책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근거로 작용한다. 그러나 지금의 논의는 반려동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번 토론회와 법안 논의에서는 정책 범위를 농장동물, 실험동물, 동물원·수족관 동물 등 "인간과 함께하는 모든 동물의복지"로 확대하는 방향이 검토되고 있다[1][5][9]. 반려동물 중심으로 여론이 형성되어 온 그간의 흐름과 달리, 산업적 이해관계가 얽힌 농장동물과 실험동물까지 논의 테이블에 오른 것은 이번 기본법 추진의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기본법에 담길 내용들
법안의 구체적 내용을 보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5년마다 국가 동물복지종합계획을 수립하고 각 시·도가 이에 맞춰지역 계획을 수립하도록 의무화하는 조항이 담겼다[3]. 또한 정책 심의를 위한 동물복지위원회와 국가동물복지정보시스템 설치·운영, 연구와 교육·홍보 및 전문인력 양성을 전담할 '동물복지진흥원' 설립도 포함됐다[3]. 상징적인 조항으로는세계동물의 날인 10월 4일을 '동물복지의 날'로 지정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3].
다만 이 법안에는 사육밀도 강화나 분만틀(스톨) 사용 제한처럼 산업 현장에 직접적인 규제로 작용할 수 있는 구체적 기준은 포함되지 않았다[3]. 즉 기본법은 세부 사육 기준을 새로 만드는 법이라기보다, 국가 동물복지 정책이 나아갈 이념과 추진 체계를 먼저 세우는 '틀'의 성격이 강하다. 실제 비건뉴스 등의 보도에서도 "구체적인 제도와 적용 범위는 향후 입법 과정에서 확정될 예정"이라는 점이 강조됐다[5].
동물의료 인프라 정비도 같은 맥락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정책 전환이 동물 의료 체계 개편과도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농식품부가 지난해 발표한 제3차 동물복지종합계획은 학대·유기 예방 강화, 정책 인프라 확충과 더불어 수의전문의 양성 및 상급동물병원·전문병원 체계 구축을 4대 추진 과제 중 하나로 담고 있다[6][7].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26년까지 병원 인증 기준을 마련하고 2027년 수의사법 개정을 추진하며, 대학동물병원을 상급동물병원으로 우선 지정할 방침이다[6].
이런 정비가 필요한 이유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2024년 기준 국내 수의사 면허 발급자는 22,806명이지만 실제 현업 종사자는 약 14,000명 수준이며, 임상수의사 8,765명 가운데 반려동물 진료 분야 종사자가 7,182명으로 전체의 82%를 차지한다[6]. 특정 분야로의 쏠림 현상이 뚜렷한 반면, 진료 과목별 전문 분류 체계나 신뢰할 수 있는 수의전문의 인증 기준은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정부의 진단이다[6]. 필자 역시 임상 현장을 거친 수의사로서, 반려동물 의료 수요가 급증하는 동안 정작 이를 뒷받침할 전문성 체계와 정보 인프라는 제자리걸음이었던 현실을 체감해 왔다. 동물복지기본법이 지향하는 '복지'라는 큰 그림 안에는, 결국 아픈 동물을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일도 포함되어야 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 '감응력 있는 존재'라는 개념
동물을 법적으로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사실 한국만의 고민이 아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1999년 암스테르담 조약부속 의정서를 통해 동물복지에 관한 첫 구체적 기준을 마련했고, 이후 2009년 발효된 리스본 조약 제13조를 통해 동물을"의식이 있는 존재(sentient beings)"로 공식 인정했다[10].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감각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주체로 법적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EU는 산란계 한 마리당 최소 750㎠의 공간을 보장하도록 하는 등 축종·사육단계별로 매우 구체적인 수치 기준을 법제화했고, 최근에는 이런 기준이 현장에서 실제로 지켜지는지 '집행력 강화'에 정책의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10].
이런 흐름과 비교하면, 이번에 국내에서 논의되는 동물복지기본법은 '동물은 고통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라는 이념 규정 단계에 가깝다. EU가 수십 년에 걸쳐 이념 정립과 세부 기준 마련, 집행력 강화라는 세 단계를 순차적으로 밟아온것을 감안하면, 한국의 이번 기본법 제정은 그 첫 단계에 이제 막 들어선 셈이다. 다시 말해 법의 이름과 이념이 갖춰지는지금이야말로, 향후 구체적 기준과 집행 체계를 어떤 속도와 방식으로 채워 나갈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함께 시작해야할 시점이라 할 수 있다.
남은 과제들 – 선언을 넘어 실행으로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기본법이 이념과 추진 체계를 규정하는 데 그친다면, 실제 농장동물이나 실험동물의 사육·이용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후속 입법이 필요하다. 산업계 입장에서는 새로운 위원회와 진흥원 설립, 종합계획 수립 등 행정 체계가 늘어나는 데 따른 부담을 우려할 수 있고, 동물보호단체 입장에서는반대로 강제력 있는 세부 기준이 빠진 '선언적 법'에 그칠 수 있다는 아쉬움을 제기할 수 있다. 실제로 정부는 이번 토론회를 통해 전문가, 동물보호단체, 산업계, 관계 부처 등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겠다고 밝혔는데[1], 이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하나의 법 체계 안에 담아내야 하는 과제가 만만치 않음을 방증한다.
또한 동물복지위원회나 동물복지진흥원 같은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데는 필연적으로 예산과 인력이 뒤따른다. 기존 지자체 동물보호센터도 시설과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에서[7], 새 조직 설립이 실제 현장의 문제 해결로 이어지려면 재원 마련 방안과 지자체 역량 강화가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농장동물과 실험동물의 경우 산업 생산성, 연구윤리, 국제 교역 기준 등과 복잡하게 얽혀 있어, 반려동물보다 훨씬 신중하고 촘촘한 사회적 합의 과정이 요구된다.
나가며 – 이름을 바꾸는 것에서 삶을 바꾸는 것으로
동물복지기본법 제정 논의는 우리 사회가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보호'라는 단어에서 '복지'라는 단어로의 전환은, 동물을 인간 생활의 부속물이 아니라 고통과 감정을 지닌 독립적 존재로 인정하겠다는 사회적 합의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의 이름이 바뀌고 이념 조항이 새로 쓰인다고 해서곧바로 현장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반려동물뿐 아니라 농장에서, 실험실에서, 동물원과 수족관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실질적 처우가 개선되려면 이번 기본법을 출발점 삼아 구체적인 하위 법령과 예산, 그리고 사회적 합의가 촘촘히뒤따라야 한다. 국회와 정부가 이제 막 문을 연 이 논의의 테이블에, 앞으로 얼마나 다양한 목소리와 실효성 있는 내용이채워질지 계속 지켜볼 일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