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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검색창에 평소 관심 있던 최신 과학 논문이나 사회학 연구 자료의 제목을 입력해 본 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치는 화면이 있다. 요약문(Abstract) 몇 줄 아래 자리 잡은 ‘PDF 다운로드: 39.95달러(한화 약 5만 원)’라는 결제창이다. 대학이나 국책 연구기관에 소속되어 도서관 라이선스를 지원받는 신분이 아니라면, 일반 대중은 물론 독립 연구자나 언론인조차 공공의 세금으로 지원된 연구 결과물에 접근하기 어렵다. 지식의 상아탑 주변에 세워진 이 견고한 ‘페이월(Paywall·유료 결제 장벽)’을 허물고 누구나 지식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전 세계적 학술 운동이 바로 ‘오픈액세스(Open Access·OA)’다.
그러나 지식을 전면 무료로 개방하자는 이상적인 취지 뒤편에는 출판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하느냐를 둘러싼 복잡한 경제학이 작동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오픈액세스를 논문이 공개되는 경로와 비용 지불 주체에 따라 ‘골드(Gold)’, ‘그린(Green)’, ‘하이브리드(Hybrid)’, 그리고 ‘다이아몬드(Diamond)’ 등 여러 갈래로 분류한다. 대중이나 초심 연구자들은 흔히 이름에 붙은 ‘골드’나 ‘다이아몬드’라는 수식을 보고 학술지의 질적 수준이나 등급을 매긴 것으로 오해하지만, 이는 학술지의 권위가 아닌 ‘출판 운영 및 재정 모델’을 구분하는 용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골드 오픈액세스’는 독자의 무료 열람을 보장하는 대신, 출판에 들어가는 제반 비용을 논문을 쓴 ‘저자’에게 청구하는 방식이다. 심사를 통과해 논문 게재가 확정되면, 저자는 논문 게재료(APC·Article Processing Charge)를 출판사에 납부한다. 이 모델은 연구 결과가 발행 즉시 전 세계에 전면 공개되므로 논문의 전파 속도와 인용률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다. 세계적인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의 자매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나 대형 오픈액세스 저널인 ‘플로스원(PLOS ONE)’ 등이 대표적인 골드 OA 저널에 속한다.
하지만 골드 OA는 최근 학계 내에서 심각한 윤리적·구조적 비판에 직면해 있다. APC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글로벌 대형 상업 출판사들의 편당 게재료는 적게는 200만 원 선에서 많게는 600만~1,000만 원을 호가한다. 연구비 지원이 풍부한 대형 이공계 연구실이 아니라면 감당하기 힘든 액수다. 이는 결국 자금력이 부족한 신진 연구자, 인문·사회과학 연구자, 그리고 개발도상국 학자들의 학술지 진입을 가로막는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낳고 있다. 심지어 일부 영리 추구형 출판사들은 게재료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엄격한 동료 심사(Peer Review)를 생략한 채 부실한 논문을 무더기로 통과시키는 이른바 ‘약탈적 저널(Predatory Journal)’ 행태를 보여 국제적 사회 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업적 왜곡에 맞서 학술 본연의 공공성을 회복하고자 급부상한 대안이 바로 ‘다이아몬드 오픈액세스(Diamond OA, 플래티넘 OA로도 불림)’다. 다이아몬드 OA는 독자에게 구독료를 받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논문을 투고하는 연구자에게도 게재료(APC)를 일절 받지 않는 ‘완전 무료·완전 개방’ 모델이다. 출판에 필요한 서버 유지비, 플랫폼 운영비, 편집 인프라 비용은 대학 도서관 컨소시엄, 비영리 학술 재단, 공공 연구 기관의 재정적 지원으로 충당된다.
비용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학술적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오해다. 오히려 다이아몬드 OA 저널들은 상업적 이윤을 추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게재 건수를 늘려 돈을 번다’는 유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순수하게 학술적 가치와 방법론적 엄밀성만을 기준으로 논문을 선별할 수 있는 구조적 독립성을 갖춘 셈이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교의 출판 인프라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국제 학술지 ‘휴머니말리아(Humanimalia)’가 대표적이다. 이 저널은 인간-동물 관계학 및 문화연구 분야의 권위 있는 연구자들이 참여해 연 2회 엄격한 피어 리뷰를 거쳐 논문을 발간하며, 독자와 저자 모두에게 일체의 비용을 부과하지 않는 다이아몬드 OA 모델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다.
글로벌 학술 생태계 역시 다이아몬드 모델을 적극 육성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유네스코(UNESCO)는 ‘오픈 사이언스 권고(Recommendation on Open Science)’를 통해 상업적 독점에 흔들리지 않는 공공 학술 출판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며, 오픈액세스 학술지 색인 기관인 DOAJ(Directory of Open Access Journals)와 유네스코 등 국제 연구 단체들은 ‘다이아몬드 오픈액세스 실천계획(Action Plan for Diamond Open Access)’을 공동 발표하며 공공 인프라 확충에 나섰다. 전 세계 DOAJ 등재 저널 중 약 60% 이상이 이미 게재료를 받지 않는 다이아몬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은 이 흐름이 결코 비주류의 시도가 아님을 보여준다.
지식의 생산자는 연구자이고, 그 비용의 상당수는 국민의 세금과 공공 연구비에서 나온다. 그럼에도 결과물을 상업 출판사가 독점하고, 다시 그 결과물을 보기 위해 대학과 대중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기형적인 구조는 한계에 다다랐다. ‘골드’의 상업적 피로감을 넘어 ‘다이아몬드’로 향하는 학계의 나침반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연구의 가치는 자본의 논리로 유통되는 브랜드에서 나오는가, 아니면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닿을 수 있는 지식의 공공성에서 나오는가.
[출처 및 참고 자료]
DOAJ (Directory of Open Access Journals): 오픈액세스 저널 분류 기준 및 전 세계 무비용(APC-free) 다이아몬드 학술지 등재 통계
UNESCO (유네스코): 《UNESCO Recommendation on Open Science (오픈 사이언스 권고문)》
cOAlition S / Science Europe / OPERAS: 《Action Plan for Diamond Open Access (다이아몬드 오픈액세스 공동 실천계획)》
Humanimalia (a journal of human/animal interface studies): 다이아몬드 오픈액세스 출판 정책 및 위트레흐트 대학교(Utrecht University) 도서관 출판 인프라 운영 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