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기사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어느 때보다 흔하게 쓰이는 시대를 살고 있다. 미디어와 대중문화는 끊임없이 사랑을 노래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는 더욱 깊은 고립과 갈등, 이기심 속으로 침몰하고 있다. 감정과 조건에 따라 쉽게 변하고 흔들리는 현대의 사랑 개념 앞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랑을 제시한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의 13장, 이른바 ‘사랑장’으로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 1절부터 7절의 말씀은 단순한 문학적 서정시가 아니다. 이는 교회의 분열과 은사의 남용으로 몸살을 앓던 공동체를 향해 선포된 강력한 신학적 경고이자, 그리스도인이 지향해야 할 삶의 가장 뛰어난 길(고전 12:31)에 대한 명확한 제시다.
대한예수교장로회의 개혁주의 신학적 전통에 기반하여, 고린도전서 13장 1절~7절이 명시하는 사랑의 본질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의미, 그리고 믿음과 소망 가운데 왜 사랑이 으뜸이 되는지 그 깊은 신앙적 궤적을 짚어본다.
1. 은사와 지식을 넘어선 본질: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1~3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1-3)
고린도교회는 성령의 다양한 은사—방언, 예언, 지식, 영분별 등—가 풍성하게 나타나던 교회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은사를 자랑하고 타인을 판단하며 분열을 일삼았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당시 고린도교인들이 가장 높게 평가하던 종교적 능력과 행동들을 하나씩 열거하며, 그 모든 것의 기초에 ‘사랑’이 빠져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통렬하게 지적한다.
1절에서 바울은 인간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는 당시 헬라 이방 신전의 우상 숭배 의식에서 쓰이던 소끄러운 악기 소리를 비유한 것으로, 사랑이 없는 영적 자랑은 신앙적 깊이가 아니라 영적 공허함과 소음에 불과함을 뜻한다.
이어 2절과 3절에서는 신학적 지식, 산을 옮길 만한 강한 믿음, 심지어 재산을 털어 구제하는 행위나 자신을 희생하여 몸을 불사르는 종교적 열심조차도 사랑이라는 동기가 부재하다면 "아무것도 아니요(Nothing)", "아무 유익이 없다"고 선언한다. 개혁주의 신학자 존 칼빈(John Calvin)은 이 대목에 대해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평가받는 것은 종교적 행위의 외형이나 능력이 아니라, 그 마음 중심을 지배하는 사랑의 동기"라고 강조한 바 있다. 즉, 사랑은 수많은 신앙의 덕목 중 하나가 아니라, 모든 덕목과 은사를 가치 있게 만드는 '생명의 근원'인 것이다.
2. 사랑의 수식어: 그리스도 예수의 성품과 십자가 (4~7절)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거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4-7)
바울이 4절부터 7절까지 기술한 15가지 사랑의 특성은 명사가 아닌 모두 '동사'로 표현되어 있다. 사랑은 추상적인 관념이나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Concrete(구체적)하고 지속적인 '행동'이며 '의지적 선택'이라는 뜻이다.
이 구절에 등장하는 '사랑'이라는 단어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넣어 읽어보면, 이 말씀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생애와 십자가 사건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래 참음과 온유함: 예수님은 죄인들을 향해, 그리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향해 분노 대신 오래 참으셨고 온유함으로 대하셨다.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아니함: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 2:6-8). 이는 자기 이익의 완벽한 포기이자 타인을 위한 온전한 주어짐이었다.
무례히 행하지 아니함과 진리와 함께 기뻐함: 세상의 소외된 이들,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으나 결코 죄와 타협하지 않으셨고, 불의를 배격하며 언제나 하나님의 진리를 기뻐하셨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딤: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 하나님의 버림받으심이라는 극심한 형벌 속에서도 온 인류를 향한 구원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견뎌내셨다.
우리가 말하는 ‘예수님의 사랑’은 아가페(Agape)의 사랑이다. 이는 자격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조건적 사랑(Philia나 Eros)이 아니라, 아무런 자격 없는 죄인을 향해 조건 없이 쏟아부어지는 하나님 편에서의 일방적이고 완벽한 사랑이다. 따라서 4절~7절 말씀은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도달해야 할 불가능한 도덕적 기준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의 인격이 어떠한지를 알게 하며, 그 사랑을 경험한 자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빚어져 가야 할 신앙적 성품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3. 왜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사랑이 으뜸인가?
고린도전서 13장은 13절에 이르러 신앙의 대단원을 맺는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으뜸은 사랑이라."
그렇다면 왜 사랑이 믿음과 소망보다 으뜸인가? 믿음과 소망이 중요하지 않아서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장로교 신학의 기초가 되는 개혁주의 구원론에 따르면,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구원을 받으며,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오늘을 견딘다. 믿음과 소망은 신앙생활의 인프라이자 필수적인 기둥이다.
그럼에도 사랑이 ‘으뜸(Greatest)’인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 영적 원리에 있다.
첫째, 영원성의 차원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며(히 11:1), 소망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를 바라는 것이다(롬 8:24-25). 그러나 마침내 주님께서 다시 오시고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완성되는 그날, 우리는 하나님을 눈과 눈으로 직접 마주 보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믿음은 '눈으로 보는 실재'로 바뀔 것이며, 소망은 '이미 성취된 현실'이 되므로 그 역할이 완성되어 소멸한다. 하지만 사랑은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요일 4:8), 그분과 영원히 교제하는 영생의 삶은 곧 '사랑의 영원한 지속'이다. 따라서 사랑은 이 땅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도 계속되는 영속적인 가치이기에 으뜸이다.
둘째,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유일한 덕목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존재이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으시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소망’하지만,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소망을 두지는 않으신다. 그러나 사랑은 다르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성품을 가장 닮아가게 된다. 믿음과 소망이 피조물이 하나님을 향해 갖는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태도라면, 사랑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우리를 통해 세상으로 흘러가는 능동적이고 신적인 유산이다.
셋째, 믿음과 소망의 목적이자 완성이다.
믿음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며, 소망의 목적은 그 사랑이 완벽하게 실현될 날을 바라보며 견디는 것이다. 즉, 믿음과 소망은 ‘사랑’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거룩한 수단이자 과정이다. 수단보다 목적이 우위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사랑이 없는 믿음은 교만이 되기 쉽고, 사랑이 없는 소망은 이기적인 욕망으로 변질될 수 있다. 오직 사랑만이 믿음과 소망을 바르게 세우고 완성한다.
[기자의 시선 / 결론]
우리가 다니는 대한예수교장로회의 고백처럼,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으며 성경은 우리의 삶과 신앙의 유일한 표준이다. 고린도전서 13장 1절~7절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와 교회에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사역과 열심에, 우리의 교리와 지식에 과연 그리스도의 사랑이 담겨 있는가?"
예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사랑이 아니었다.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끝까지 참아내며,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완성의 사랑이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영향력을 잃어가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화려한 프로그램이나 날카로운 논쟁이 아니다.
자신을 낮추고, 오래 참으며, 불의를 배격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그리스도의 본질적 사랑을 삶으로 증명해 내는 일이다. 믿음과 소망의 견고한 발판 위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사랑의 열매'를 맺어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가장 뛰어난 길'이자 그리스도인의 영원한 사명이다.
[참고 문헌 및 출처]
성경 본문: 개역개정 성경, 고린도전서 13장 1절~7절, 13절.
신학 서적 및 주석:
존 칼빈 (John Calvin), 『칼빈 성경주석: 고린도전서』, 성서교재간행사.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의 동기와 은사의 본질에 관한 해석 참조)
찰스 호지 (Charles Hodge), 『고린도전서 주석』, 크리스챤서적. (개혁주의 입장에서 본 사랑의 영원성과 믿음·소망·사랑의 관계 분석)
Gordon D. Fee,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NICNT), Eerdmans. (고린도전서 13장의 문맥적 구조와 15가지 사랑의 동사형 용례 해석)
교단 교리 기준: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 및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하나님의 성품 및 성도의 교제, 은혜의 방도에 관한 신학적 기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