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데카르트의 기계론에서 문어의 권리까지, '동물 지각 능력(Animal Sentience)'의 역사
우리는 매일 다양한 동물들과 공존하며 살아갑니다. 집 안에서 가족처럼 지내는 반려견과 반려묘부터, 농장에서 키워지는 가축들, 그리고 횟집 수족관에서 파닥이는 물고기나 대형 마트 신선코너에 놓인 바닷가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문득 그들의 눈빛이나 움직임을 보며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 존재들은 정말로 우리처럼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걸까?"
철학계와 생물학계에서는 이처럼 감각을 통해 고통과 쾌락을 경험하고, 주관적인 내면세계를 갖는 능력을 '동물 지각 능력(Animal Sentience)'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단순히 외부 자극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기계적 메커니즘을 넘어, 그 자극을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느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인류가 동물의 지각 능력을 어떻게 바라보고 정의해 왔는지, 그 역사적인 인식의 대전환 과정을 짚어봅니다.
1. 17세기 암흑기: "동물은 정교한 시계태엽일 뿐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동물의 지각 능력이 본격적으로 철학적 도마 위에 오른 것은 17세기 과학혁명기였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시작은 매우 냉혹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가 있었습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을 '생각하는 정신(res cogitans)'을 가진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로 본 반면, 동물은 영혼이 없는 일종의 자동인형(automata)이나 물리적인 기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동물이 고통으로 울부짖는 것은, 시계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갈 때 소리가 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동물 기계론'은 당대 과학자들에게 생체 해부나 잔인한 실험을 죄책감 없이 행할 수 있는 철학적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동물이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외적 표현은 물리적 자극에 대한 기계적 신경 반응일 뿐, 그 내면에는 고통을 슬퍼하거나 아파하는 '주체(의식)'가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이 시기 동물의 지각 능력은 철저히 부정당했습니다.
2. 18세기 전환점: "말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
18세기에 접어들며 이 냉혹한 기계론적 세계관에 거대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은 1789년 저서 《도덕과 입법의 원칙 서설》을 통해 생명체를 바라보는 완전히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습니다.
벤담은 어떤 존재를 도덕적으로 고려해야 할 때, 그 기준이 인간 기준의 '이성'이나 '언어 능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줄기찼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이성을 갖추었는가'도 아니고, '그들이 말할 수 있는가'도 아니다. 바로 **'그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Can they suffer?)'**이다."
벤담의 이 선언은 동물의 '지각 능력(Sentience)'을 도덕적 논의의 핵심 조건으로 격상시킨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인간처럼 글을 쓰지 못하고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더라도, 고통과 쾌락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고통을 받지 않을 도덕적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인류 역사에 처음으로 싹트기 시작한 것입니다.
3. 19세기 과학적 근거: 찰스 다윈과 진화적 연속성
19세기, 벤담의 철학적 주장은 생물학의 거장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을 만나며 단단한 과학적 토대를 얻게 됩니다. 다윈은 1872년 저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정신적, 정서적 능력이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니라 '진화적 연속 선상'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윈은 공포, 기쁨, 슬픔, 질투 같은 감정이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동물들 역시 척추동물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생존과 번식을 위해 이러한 감각과 지각 능력을 함께 진화시켜 왔음을 정밀한 관찰을 통해 증명했습니다.
개가 기쁠 때 꼬리를 흔들고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나, 유인원이 슬플 때 짓는 표정은 인간의 감정과 본질적으로 같은 진화적 뿌리를 두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다윈 덕분에 동물 지각 능력은 철학적 가정의 영역에서 비로소 '과학적 탐구'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4. 20세기 행동주의의 제동과 '동물 해방'의 부활
그러나 20세기 초중반, 심리학과 생물학계를 지배한 행동주의(Behaviorism) 사조는 동물의 지각 능력 연구에 다시 한번 제동을 걸었습니다. 과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동물의 '마음'이나 '주관적 감정'을 다루어서는 안 되며, 오직 관찰 가능한 '자극과 반응(행동)'만을 측정해야 한다는 학풍이 주류를 이룬 것입니다. 이 시기 학계에서 동물의 감정이나 고통을 언급하는 것은 비과학적인 '의인화'로 치부되곤 했습니다.
이 흐름을 다시 뒤집은 것은 1970년대였습니다.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1975년 저서 《동물 해방》을 발표하며 벤담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부활시켰습니다. 싱어는 이익평등고려의 원칙을 내세우며,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존재(Sentient beings)의 이익은 인간의 이익과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동시에 현대적 축산업(공장식 축산)과 실험실에서 자행되는 동물의 고통을 폭로하며, '지각 능력'을 가진 존재들을 도덕적으로 외면하는 사회적 관습을 '종차별주의(Speciesism)'로 규정했습니다. 이는 학계를 넘어 전 세계적인 동물권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5. 21세기 현대 과학: 척추동물을 넘어 무척추동물까지
21세기에 접어들며 뇌과학, 신경생물학, 동물행동학의 비약적인 발전은 동물의 지각 능력을 완벽한 팩트의 영역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 기념비적인 순간이 바로 2012년 선언된 '의식에 관한 케임브리지 선언(Cambridge Declaration on Consciousness)'입니다.
세계적인 뇌과학자와 고생물학자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인간이 아닌 동물들(모든 포유류와 조류, 그리고 문어 등) 역시 의식을 생성하고 주관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신경학적 기질(Neuroanatomical substrates)을 명확히 가지고 있음이 공식 선언되었습니다. 즉, 그들도 인간처럼 뇌를 통해 고통과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종지부를 찍은 것입니다.
최근의 연구들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더욱 격렬하게 깨뜨리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단순한 반사 신경으로만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어류(물고기), 게·바닷가재 같은 십각류, 문어·오징어 같은 두족류(무척추동물) 역시 정교한 지각 능력을 지니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예를 들어, 문어는 고통스러운 자극을 받으면 그 장소를 의도적으로 회피할 뿐만 아니라, 상처 부위를 감싸고 달래는 행동을 보입니다. 진통제를 투여하면 고통스러워하던 행동을 멈추기도 합니다. 이는 단순한 반사가 아니라 뇌에서 고통을 '주관적으로 인지'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이러한 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2022년 영국 정부는 '동물 복지(지각 능력) 법안(Animal Welfare (Sentience) Act 2022)'을 통과시키며, 십각류(게, 바닷가재)와 두족류(문어)를 법적으로 '지각 있는 존재(Sentient beings)'로 공식 인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스위스나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바닷가재를 산 채로 끓는 물에 던지거나 마취 없이 기절시키지 않고 조리하는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도덕적 울타리의 확장
데카르트의 냉혹한 '시계태엽 동물론'에서 출발해, 고통을 기준으로 삼은 벤담과 진화론의 다윈을 거쳐, 오늘날 문어와 물고기의 고통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까지. '동물 지각 능력'의 역사는 인류가 도덕적 배려의 울타리를 어디까지 넓혀왔는지를 보여주는 확장의 역사입니다.
어떤 존재를 '지각 능력이 있는 존재'로 인정한다는 것은 법적·철학적으로 매우 무거운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그 존재를 내 마음대로 다뤄도 되는 단순한 '재산'이나 '물건'이 아니라,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누릴 권리가 있는 하나의 '생명 주체'로 존중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동물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리고 알고도 외면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의 차이는 우리 인류의 도덕적 성숙도를 보여주는 척도입니다. 현대 사회의 동물 복지와 환경 윤리적 논의의 중심에는 언제나 이 '지각 능력'이라는 질문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출처 및 참고 문헌]
René Descartes, Discourse on the Method (1637)
Jeremy Bentham, An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 (1789)
Charles Darwin, The Expression of the Emotions in Man and Animals (1872)
Peter Singer, Animal Liberation (1975)
The Cambridge Declaration on Consciousness (2012)
UK Government, Animal Welfare (Sentience) Act (2022)
Jonathan Birch, Review of the Evidence of Sentience in Cephalopod Molluscs and Decapod Crustaceans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