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일본은 온천이 많을까요?
  • 일본 열도를 여행하다 보면 “어디를 가도 온천이 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금방 알게 된다. 실제로 일본 환경성(環境省)의 온천 이용 현황 통계(令和4年度 기준)에는 일본 전역의 온천 ‘원천(源泉)’ 수가 2만7천여 개로 집계돼 있다.  이 압도적인 밀도는 단순히 ‘화산이 많아서’라는 한 줄로 설명되지 않는다. 일본의 온천은 지질 구조(섭입대·단층·화산호), 지하 열원(지열 흐름), **지구화학(물-암석 반응·가스·염분의 기원)**이 맞물려 만들어진 결과물이며, 그 위에 수백 년의 이용 문화와 제도가 쌓였다.

    “온천”은 어디까지를 온천이라 부를까: 유래와 제도

    일본에서 온천은 오래전부터 치료·휴양 문화로 발전해 왔지만, 현대적 의미에서 “온천”은 법으로 정의된다. 환경성이 안내하는 ‘온천법(温泉法, 1948년 제정)’에 따르면, 온천은 지중에서 솟는 온수·광수·수증기 및 가스(천연가스 제외) 가운데 일정한 온도 또는 특정 성분 기준을 만족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일본의 온천 문화는 “뜨거운 물”의 체험을 넘어, 지하에서 올라오는 유체(물·증기·가스)를 과학적으로 분류하고 관리하는 행정·위생 체계와 함께 성장해 왔다.

    일본에 온천이 많은 1차 이유: ‘섭입대 국가’가 만드는 열과 통로

    일본은 태평양판·필리핀해판 등이 대륙판 아래로 들어가는 섭입대(plate subduction) 위에 길게 놓인 화산호(arc)다. 섭입 과정에서 지각 내부로 물과 휘발성 성분이 공급되면, 맨틀 쪽에서 암석이 더 쉽게 녹아 마그마 활동과 화산열이 활발해진다. 이때 만들어진 열은 지하수에 전달되고, 단층·균열·화산체 주변의 빈 공간은 **물이 깊이 순환할 ‘길(투수성 통로)’**이 된다. 뜨거워진 물은 밀도가 낮아져 상승하려는 힘을 얻고, 지표 가까이에서 다시 식으며 광물 성분을 머금은 채 솟아오른다. 일본의 온천이 특정 지역(화산대, 그 주변 그라벤·단층대)에 특히 집중되는 패턴도 이런 “열원+통로” 모델로 잘 설명된다. 

    2차 이유: 비·눈이 많은 기후가 “지하수 공장” 역할을 한다

    온천수의 출발점은 대개 하늘에서 내려온 **강수(빗물·눈)**다. 비와 눈이 산지에 스며들어 지하로 내려가고, 단층대를 따라 더 깊이 순환하며 가열된 뒤 다시 상승한다. 즉 일본의 온천은 “화산열”만이 아니라, 풍부한 강수량과 산지 지형이 제공하는 지하수 재충전(recharge) 없이는 지금 같은 규모로 유지되기 어렵다. 온천은 열과 물이 동시에 풍부한 곳에서 ‘산업’이 된다.

    지구화학으로 보면 더 선명해진다: 일본 온천수가 다양한 이유

    같은 ‘뜨거운 물’이라도 일본 온천이 지역마다 냄새, 색, 촉감이 다른 것은 물이 지나온 길에서 암석과 반응하고, 가스와 섞이고, 때로는 바닷물 기원의 염분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1. 물-암석 반응: 고온의 물은 암석에서 나트륨·칼슘·마그네슘 같은 이온을 용해시키고, 규산(실리카) 등도 함께 운반한다. 이는 온천의 “미끌미끌한 감촉”이나 침전물(온천 화산석·석회질 등) 형성에 영향을 준다. (일반적인 열수계에서의 구조·단층 지배는 다른 지역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2. 가스의 역할: 화산성 지역에서는 이산화탄소(CO₂), 황화수소(H₂S) 같은 가스가 물에 녹아 들어가 산도(pH)와 환원-산화 조건을 바꾸고, 결과적으로 용해·침전 반응을 크게 흔든다. 유황 온천 특유의 냄새가 대표적으로 황화수소와 관련된다는 설명도 널리 알려져 있다. 
    3. 염분의 기원(바닷물·화석 해수·혼합): 일본의 일부 온천은 단순한 강수 기원만이 아니라, 지하에 갇혀 있던 화석 해수(fossil seawater) 또는 바닷물 성분과 섞여 높은 염분을 보이기도 한다. 도야마 지역 온천수의 수소·산소 동위원소 및 화학 조성으로 “강수 기원군”과 “화석 해수 혼합군”을 구분한 연구는, 일본 온천수의 다양성이 ‘물의 출처’에서부터 시작함을 보여준다. 
    4. ‘泉質(센시츠)’ 분류 체계: 일본은 온천수를 성분 기준으로 나누는 문화가 발달해 있다. 예컨대 염화물천(塩化物泉), 탄산수소염천, 황산염천, 유황천 등으로 나누고, 각 성분의 기준과 특징을 안내한다.  또한 일본 온천 성분의 특징과 기원을 지구과학 관점에서 정리한 논문도, 일본에서 흔한 온천 유형(단순온천, 염화물천 등)과 그 배경을 개관한다. 

    ‘많다’는 말의 실감: 대표 도시 사례

    온천 밀도가 높은 지역을 보면 “열원+통로+수자원” 조건이 얼마나 강력한지 체감된다. 예를 들어 오이타현 별부(別府)시는 시 공식 데이터로 원천 2,832개, 용출량 101,905 L/min을 제시한다.  화산대 주변의 지열 시스템이 도시 규모의 생활·관광 인프라로 연결된 전형적인 사례다.

    결론: 일본 온천의 본질은 “판구조론이 만든 지하 순환 시스템”

    정리하면, 일본에 온천이 유난히 많은 이유는 (1) 섭입대로 인해 열이 꾸준히 공급되고, (2) 산악 지형·단층·화산이 물이 드나들 통로를 만들며, (3) 비·눈이 지하수 재충전을 보장하고, (4) 그 과정에서 물이 암석·가스·염분과 반응해 성분 다양성까지 키우기 때문이다. 일본의 온천은 “문화 콘텐츠”이기 전에, 지구 내부 에너지와 물이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 지질·지구화학적 산물이다. 그리고 그 산물을 ‘온천’이라는 이름으로 정의하고 관리해 온 제도가, 오늘날 일본을 ‘온천 국가’로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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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출처
    • 일본 환경성(環境省) 「令和4年度 温泉利用状況」 통계 PDF 
    • 일본 환경성(環境省) 「温泉の定義(温泉法에 따른 정의)」 
    • Beppu City(別府市) 온천 데이터(원천 수·용출량) 
    • Muramatsu (2011) 「日本の温泉成分の特徴と起源」(J-STAGE PDF) 
    • Sasaki et al. (2021) hot spring water의 기원(강수·화석 해수 혼합) 관련 연구(ScienceDirect 초록) 
    • 일본 온천협회 관련 안내: 온천 ‘泉質’(예: 염화물천) 기준·특징 
    • 환경성 「鉱泉分析法指針」(분석·분류 지침) 
    • HOKKAIDO LOVE! 유황 온천과 황화수소 설명 
  • 글쓴날 : [25-12-22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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